영혼까지 끌어서 내집마련 후기 - 주택 공급 비탄력성의 비극

기도에 살던 나는 와이프의 동네인 서울 은평구로 이사를 왔다. 불광천에서 산책하기 좋은 동네인 은평구 말이다.


물론 같은 30평대 아파트를 구입할 수는 없었다. 안방에 큰 장롱을 놓아야 할 공간이 필요했는데 20평대 집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오래된 구축 아파트 30평대 전세를 계약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났다. 내가 세 들어 살던 아파트는 일 년 만에 4억 대에서 5억 대 중반으로 올랐다. 2019년 여름에는 4억 대였는데 말이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네이버 부동산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고 나면 호가가 올라가 있었고 계속 신고가를 쓰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영혼까지 끌어모아(이하 영끌) 봤더니 수중에는 돈이 1억 좀 넘게 있었다.


이미 서울 전 지역은 투기과열지구니 뭐니 묶여 있어서 대출이 적게 나오는 상황이고 서울에서 태어난 둘째의 울음소리는 나에 대한 원망 같았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사랑하는 나의 새끼들과 와이프가 다시 경기도로 밀려나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한적한 경기도로 이사 갔다가 우울증이 왔던 와이프. 그로 인해 둘째를 갖지 못했고 서울로 이사 오자마자 둘째가 태어났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난 서울에서 계속 살아야 했다. 그리고 지하철로 30분 걸리는 출근길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이 모든 걸 버리고 다시 경기도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물론 경기도에도 은평구보다 훨씬 비싼 곳이 많다. 와이프는 북적북적한 서울, 그중에서도 자신이 오래 살았던 은평구가 좋았나 보다)


아직 전세 만기가 일 년 정도 남아있었지만 이러다가는 신용대출을 받고 전세를 살아야 할거 같은 불길함이 내 몸을 감쌌다. 그리고 이미 전셋집은 다른 집주인에게 팔려 만기에 반드시 나가야 하는 상황. 돌파구가 필요했다.


지난 2020년 여름. 급하게 신용대출을 알아봤고 회사에서 직원 복지로 해주는 대출까지 낀다면 맘에 드는 20평대 아파트를 4억 대에 매입할 수 있어 보였다. 그래서 겨우겨우 맞춰 봤더니 취득세 낼 돈이 부족하더라… 다시 경기도로 나가야 하는 찰나. 우리 가족에게는 아직 남아있는 영혼의 조각이 있었다. 그 조각은 첫째의 돌 반지였다. 갓 블래스미.


보통 영끌이라고 하면 신용대출까지 받은 걸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진정한 영끌이었다. 때마침 급등한 금 값이 감사했다. 정말 하늘이 도운 케이스다. 그렇게 어렵게 집을 마련하고 2달이 지난 지금. 집은 조금 좁아졌지만 마음만은 태평양처럼 넓고 평온해졌다. 내 집이 이렇게 좋은 거구나 싶다.


부동산 안정을 위해서는 공급이 중요

가격을 논하기 위해서는 맨큐의 경제학에서 배운 수요와 공급곡선에 대해 이야기해봐야 한다. 수도권 집값이 계속 오르는 이유는 모든 직장이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날아 출근하지 못하는 이상. 수도권에 대한 수요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늘어나는 수요를 소화할 공급이 필요한데 분양가상한제 등으로 공급을 묶어놓았다.

이렇게 수요가 몰려 가격이 뛰고 있는데 바로 옆에 시행사가 땅을 사서 새 아파트를 대규모로 공급하면 어떻게 될까. 신규 공급이 수요를 흡수해 가격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즉, 까다로운 주택 규제가 없는 도시는 수요가 늘어나면 신규 택지 공급 등을 통해 탄력적으로 주택 공급이 이뤄진다. 다수의 시행사는 가격 상승분을 수익으로 얻고자 하니 말이다. 결국 공급은 탄력적으로 늘어나고 공급 곡선은 수평이 된다. 수요가 많이 늘어나도 가격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Let it be

현 정부도 공급이 단시간 내에 늘어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수요를 잡기 위해 그렇게나 대출을 조이고 있는 거다. 그럴 거면 왜 공급을 줄이는 분양가 상한제 같은 제도를 실시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냥 시장의 순리대로 내버려 두면 될 것을 말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3기 신도시를 꺼내 들었는데 아직 멀었다. 이제 토지 구역을 정하고 땅을 매수하고 있는데 과연 언제 완공이 되고 입주가 가능할까. 3기 신도시가 가시권에 왔을 때 아마 수도권 부동산 시장은 안정화되지 않을까?

물론 시중 유동성이 주요 원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는 코로나 사태 이후 재정 완화에 국한된 이슈이며, 2018년부터 부동산은 대세 상승에 있었다.

결국 지금의 폭등은 수요는 지속되는데 공급이 줄어들어서라고 판단된다. 새 집에서 살고자 하는 열망을 외면하지 말고 용적률도 과감하게 풀고 분양가 상한제 같은 제도는 폐지하는 게 좋을 것이다.

3기 신도시라는 비장의 카드를 위해 수요를 억누르고 있는 정부. 진작에 Let it be 하지 그랬나 싶다. 

댓글

  1. 안녕하세요, KBS 프로그램 제작진입니다.

    현재 소위 '영끌' 현상 및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그리고 대선후보들의 부동산 공약 관련해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는 방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관련해서 저희가 몇 가지 궁금한 점들
    여쭤보면서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지요? 짧은 통화라도 좋으니
    답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10-4021-8082 / cyllin@hanmail.net
    통화 편하신 시간대와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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